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을 연주하고 있다. WCN 제공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을 연주하고 있다. WCN 제공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가 세계 최고의 관현악단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좋은 연주뿐만 아니라 그들만의 동질의 소리를 만들어 조화로운 음향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가공할 음색과 응집력을 만들었고, 오늘날 빈 필하모닉의 밑거름이 됐다.

그렇기에 빈필은 내한 소식만으로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이에 더해 올해 내한 공연에서는 빈과 관련된 기획도 흥미로웠다. 지휘자부터 빈과 인연이 깊다. 

오스트리아 출신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1987년부터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왔고, 2011년과 2013년에 이어 내년 1월에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 무대에 오른다. 

프로그램에도 그 중심에 빈이 있다. 

특히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둘째 날 공연에는 낭만 시대의 빈을 대표하는 브람스와 20세기 초에 빈 국립 오페라단을 이끌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들로 꾸며졌다.

 

이 날도 전날처럼 본 공연의 시작에 앞서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를 애도하는 의미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고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첫 연주곡은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 작곡가는 ‘우는 작품’이라고 말했지만 경쾌한 리듬과 서정적인 선율, 두드러진 목관의 음색 등이 오히려 무게감을 덜어내는 곡이다. 

작곡 당시 교향곡 두 편과 바이올린 협주곡이 성공을 거두고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는 등 브람스과 작곡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작품에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없기 때문에, 지휘자가 어떤 방향으로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활동적인 리듬에 열정을 더하고, 현악에 무게 중심을 두어 진지하고 비극적인 면모를 강조했다. 특히 현악이 갖는 남다른 일체감과 무게감은 그 효과를 더했고, 

금관은 대단원의 순간을 장식함으로써, 실내악에서 보여준 브람스의 비극적 인상을 관현악으로 옮겨놓았다. 

하지만 악장의 리드가 필요 이상으로 두드러져 현악의 앙상블이 때로 일치되지 않았고, 호른이 충분한 소리를 내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이어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이 연주됐다. 이 작품은 감정의 변화가 대단히 큰 네 개의 악장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 것이 중요하다.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이 작품을 ’절대음악‘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감정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신고전주의자였던 브람스를 생각하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해석이었다. 특히 짙은 낭만성으로 이질적이기도 한 3악장을 스케르초로 접근해 교향곡으로서의 구조적인 흐름을 견지했다. 

 

다수가 참여하는 현악기의 각 파트는 모든 음역에서 하나의 악기가 내는 듯한 일치된 음향을 만들었다. 현악과 관악의 밸런스도 훌륭했다. 

다만 목관의 음색이 또렷하지 않았는데, 앙상블에 중점을 두어 독주 부분에서 소리를 도드라지게 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악장에서 오보에가 음정을 여러 차례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은 의아스러웠다.

후반부를 채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교향시의 소재가 된 니체의 동명 철학서 내용을 아는 게 곡 이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작곡가는 관현악의 음색을 폭넓게 사용하면서 각 장면의 의미를 음악에 효과적으로 투영했기 때문에 음악 자체만으로 충분한 예술적 감흥을 준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악상들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 강한 응집력을 발휘해 연주해야 한다.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악기들을 바꿔가며 연주하는 하나의 선율에서도 잘 연마된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고 유연하게 진행함으로써 이런 요구에 부응했다. 

또한 특징적인 음악적 제스처들을 적절하게 드러내 긴장감을 유지했다. 이로써 극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관객이 그 세계에 몰입해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환상적인 더블베이스의 푸가도 기억에 남는다. 이는 관현악단 최고의 가치인 조화롭고 일치된 앙상블의 이상을 성공적으로 들려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만 호른의 실수가 몰입을 방해했고, 대단원에 이른 부분에서 타악기가 조심스럽게 연주했던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균형과 조화에 무게를 뒀기 때문이지만 관객에게 청각적으로 의미 있는 음량을 내는 것도 필요하다.

본 공연이 마친 후, 벨저-뫼스트는 “빈에서는 왈츠가 큰 의미가 있다”는 멘트와 함께 앙코르로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수족관 왈츠’를 들려줬다. 

이 곡은 왈츠로서는 비교적 차분하고 소란스럽지 않은데, 국가 애도기간의 분위기를 고려해 선정했을 것이다. 이 곡에서도 빈필은 일치된 음향과 앙상블의 조화에 중점을 둔 연주를 들려줘, 

하나의 악기로서의 오케스트라의 이상을 실현했다.

글=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